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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이방원' 말 사망 충격... 과거 촬영용 말 머리 주먹질도

돌풀 2022. 1. 21.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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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사극 촬영에 동원된 말에게는 스스로 신체를 보호할 권리도 자유도 없다. 촬영 계약에 우선한 탓에 주인에게도 그러한 권한은 대부분 없다고 하니 참으로 개탄스럽다. 촬영 관계자 모두에게 사람의 안전은 중요한 문제였더라도 말은 그저 동물이기에 아마도 그것이 소모적인 논의 요소였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최근 사극 촬영에 동원된 말 한 마리가 죽었다. 2022년에야 비로소 이 사건을 계기로 촬영 현장의 동물 안전에 관한 얘기가 화두로 떠올랐다.

 

말 머리 주먹질도 서슴없이... “차마 불쌍해서 못 봐

사진 출처 : KBS, 동물자유연대 인스타그램. 사극 드라마 '태종 이방원'의 낙마 신 촬영 중 스턴트맨과 말이 바닥에 고꾸라져있다.

KBS 1TV 대하드라마 '태종 이방원' 촬영 중 동원된 말이 사망하면서 동물 학대 논란이 불거졌다. 낙마신을 촬영하는 과정에서 말의 다리에 와이어를 걸어 강제로 넘어트리게 한 것이 화근이었다. 스턴트맨은 나가떨어졌고 말 역시 머리로 떨어지다시피 해서 쉽사리 일어나질 못했다. 인간이나 말 모두 척추골절이나 뇌출혈까지 우려될 만큼 무지막지하게 촬영된 장면은 제 날짜에 방영되었고, 촬영 당시의 동영상은 언론에 고스란히 보도되어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우리는 촬영장의 동물의 권리에 대해서 얼마나 고민해 봤을까. 예나 지금이나 드라마에 숱하게 등장하는 말들은 걸으라면 걷고, 뛰라면 뛰면서 인간의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눈이 오고 비바람이 몰아쳐도 촬영에 동원된 말이라면 응당 지시에 대한 복종이 의무였다.

 

한때 그러니까 대략 10여 년 전, 말 농장을 방문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 있다. 큰 눈망울과 긴 속눈썹, 탄탄한 몸통과 건강한 다리로 목초지를 누비는 자유로움을 보면 왠지 모르게 편안함과 해방감이 동시에 들 거란 생각에서였다. 그 당시 방송현장에서 오래 일한 드라마 스태프는 내 바람을 듣고는 촬영장에서 말의 처지를 이야기했다. 사극 현장에서의 말이 지시에 잘 따르기도 하지만 간혹 그렇지 않을 때 주인이나 촬영 스태프들 모두 곤혹스러워진다는 것이었다.

 

촬영스태프들 입장에서야 가뜩이나 시간에 쫓기며 찍는 입장이니 말의 저항이 반가울 리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자꾸만 삐딱선을 타는 녀석을 데려온 주인은 계약이행과 사방의 눈치를 줄이기 위해서였는지 몰라도 말 머리로 곧장 주먹을 내리꽂았다고 한다. 몇 번의 주먹질이 이어지면 인간의 폭력성에 굴복한 말은 마지못해 움직이는 소품이 되더란 것이다. 지인은 그러한 광경을 차마 불쌍해서 못 보겠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인간에 보기 좋은 그림을 만들겠다고는 하지만, 그저 걷고, 뛰고, 구르고 때로는 강제로 다리를 휘감은 줄에 채여 머리로 떨어지기까지 한 말들은 내색조차 못하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아온 국내외 드라마나 영화 속 말들을 보면 이러한 촬영과정이 비단 일회성은 아니었을 거란 짐작이다. 더미나CG 기술 등 어떻게든 시청자들의 눈에 그럴싸하게 보일 만한 기술이 생긴 오늘날에도 이렇게 동물을 학대하면서까지 촬영하는 게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동물의 권리에는 너무 무심한 채 인간의 이기심만 작동한 게 원인이라고 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촬영장에서 주먹질당한 말에 관해 듣던 10여 년 전에도 그랬지만 이번 논란은 언젠가는 터지더라도 반드시 터질 일이었다고 본다. 인간의 말을 하지 못하는 동물이라고 해서 그 생명들을 소모적이고 싸구려 소품처럼 다뤄온 생명 경시 행위들이 2022년이 되어서야 다뤄진다는 게 참 안타깝다.

 

'동물학대' 후폭풍 경악 금할 수 없어”, 고꾸라진 말 1주일 뒤 사망

사극 드라마 '태종 이방원'의 낙마 신 촬영 중 달리던 말이 와이어에 채여 머리가 땅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다. - 사진 카라

현재 KBS 1TV ‘태종 이방원은 동물 학대 논란이 커지자 2주 연속으로 결방하기로 했다. 오는 22일과 23일 방송분인 13~14회분을 접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설을 앞두고 스페셜 방송으로 대체하기로 했던 29일과 30일 방송도 쉬겠다는 입장이다.

 

KBS 시청자권익센터에는 지난 17태종 이방원 7화 이성계 낙마신 말, 살아있나요?”라는 청원 글이 올랐다. ‘태종 이방원제작진의 촬영장 내 말 학대 의혹이 불거진 계기였다.

 

청원인은 이 글에서 “(태종 이방원) 7화에 나왔던 이성계 낙마신에서 말이 땅에 완전히 꽂혔다말을 강압적으로 조정하지 않고서야 저 자세가 나올 수가 없을 텐데 혹시 앞다리를 묶고 촬영한 것이냐라고 의문을 품었다.

 

동물자유연대가 당시 말 촬영 장면을 인스타그램에 공개했는데 영상은 처참했다. 말이 와이어에 다리가 묶인 채 달리다 급작스레 꼬꾸라지는 모습이 담겼기 때문이다.

 

동물자유연대는 “많은 이들이 우려했던 대로 말을 쓰러뜨리는 장면을 촬영할 때 말의 다리에 와이어를 묶어 강제로 넘어뜨린 사실을 확인했다면서 “2022년 대한민국 공영방송의 촬영이 이러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이후 시청자들은 동요했고 청와대 국민청원에 드라마 태종 이방원방영 폐지를 주장하는 글이 올라 21일 오전 기준 4만여 명의 국민들이 동의했다.

 

KBS는 논란이 확산하자 사과의 입장을 전하면서 말의 안타까운 사망 소식도 전했다.

 

KBS20“‘태종 이방원촬영 중 벌어진 사고에 대해 책임을 깊이 통감하고 사과드린다라며 다시는 이 같은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다른 방식의 촬영과 표현 방법을 찾도록 하겠다라고 알렸다.

 

KBS는 이어 사고는 지난 112, ‘태종 이방원’ 7회에서 방영된 이성계의 낙마 장면을 촬영하던 중 배우가 말에서 멀리 떨어지고 말의 상체가 땅에 크게 부딪히는 사고가 발생했다라고 했다.

 

특히 사고 직후 말이 스스로 일어났고 외견상 부상이 없다는 점을 확인한 뒤 말을 돌려보냈다. 하지만 최근 말의 상태를 걱정하는 시청자들의 우려가 커져 말의 건강 상태를 다시 확인했는데, 안타깝게도 촬영 후 1주일쯤 뒤에 말이 사망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라고 밝혔다.

 

동물보호단체 카라20일 서울 마포경찰서에 태종 이방원촬영장 책임자를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 상태다.

 

카라는 KBS ‘태종 이방원촬영 중 사고는 단순 사고나 실수가 아닌 인간의 계획된 연출로서 고의에 의한 명백한 동물 학대 행위라고 지적했다.

 

KBS는 동물학대 논란으로 인한 악화된 여론을 의식했는지 현재 사고 장면이 담긴 '태종 이방원' 7회는 KBS 홈페이지는 물론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다시보기에서 찾아볼 수 없다.

 

부디 이번 논란을 계기로 말 머리에 주먹질을 하고, 땅에 고꾸라지게 하면서도 느끼지 못한 그들의 잔악한 둔감증이 완전히 깨지기를 바란다. 인간의 목적이라면 말을 땅에 내다 꽂고, 돌고래를 잡아들여 쇼에 세우고, 관광용 코끼리 등에 올라탄 채 쇠침을 찍어대는 등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던 인간들이 동물들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헤아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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