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이재훈 씨는 아르바이트하겠다는 아들을 일터에 소개한 자신을 책망했다. 이선호 군은 2021년 4월 22일, 평택항 부두에서 300kg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압사당했다. 아버지는 그렇게 아들 선호 군의 장례식 상주가 되고 말았다.
문재인 대통령, 고 이선호 군 빈소 찾아 "송구하다"
사고 당일 오후, 선호 씨는 컨테이너 작업장에 연장이 필요하다는 연락을 받고 심부름을 갔다. 그곳에서 돌아오지 않는 것을 이상히 여긴 아버지 재훈 씨는 거대한 구조물 아래 잠든 듯 쓰러져 있는 아들을 발견했다. 지게차가 구조물을 건드리자 그 진동으로 반대편의 구조물이 무너지면서 선호 씨를 덮친 것이다.
CCTV 화면 상, 선호 씨는 사고 전 컨테이너 주변 이곳저곳으로 다니면서 쓰레기를 줍고 있었다. 그런데 지게차의 움직임에 순식간에 컨테이너 날개가 쓰러졌고 두개골, 경추, 흉골, 폐까지 짓눌린 채 숨을 거두고 말았다.
세관 검사 파트에서 일하던 선호 군은 누구의 지시를 받고 컨테이너 근처에서 일해야 했을까. 현행법상 일정 규모 이상의 컨테이너 작업을 할 경우 안전관리자와 신호수 등이 배치되어야 한다. 안전모 등 보호구도 지급돼야 하지만 이런 조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선호 군이 어떤 경위로 사고 현장에 향했는지 회사 관계자 그 누구도 밝히거나 죽음에 관해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한강에서 죽었다는 한 대학생의 죽음과 의혹에 관해서는 언론이 일제히 보도에 열을 올렸지만 안전관리 소홀로 작업장에서 쓰러진 노동자의 죽음에는 때만 되면 일어나는 사고라서인지 관심이 뜸했다.
이재훈 씨는 “며칠이 지났는지도, 내 아들이 죽었는지도 모르겠다. 내 새끼 어디 갔나”라며 울었다.
선호 군의 누나 이은정 씨는 “내 동생이 억울하게 죽었는데 기사가 ‘평택항 야적장에서 20대 이 군이 병원으로 가는 도중에 숨졌다’라는 기사 한두 개만 있더라”라고 씁쓸해했다. 그러면서 “동생 보내고 싶지 않다. 근데 엄마가 동생 추운 거 싫어한다고 쟤 빨리 보내줘야 한다고...”라며 말을 채 잇지 못한 채 눈시울을 붉혔다.
그날 컨테이너 야적장에 공구 심부름을 가던 선호 씨는 일행이 있었다. 사고를 목격한 외국인 노동자였다.
외국인 노동자는 당시 현장에 있던 지게차를 몰던 사람이 쓰레기를 치우라고 지시했다고 했다. 외국인 노동자가 일하는 3년 내내 현장에서 안전모를 쓴 것은 딱 네 번이라고도 했다.
언제 사고가 일어날지 모르는 작업장에 안전모도 없이 노동자를 투입한 책임은 당연히 회사에 있다. 하지만 현장에 안전관리 책임자가 없었다는 것에 대해 원청업체 관계자는 “안전관리 작업자가 있었지만 임무 수행을 못했을 뿐이다”라고 주장했다. 회사 측이 말한 안전 책임자는 바로 옆 컨테이너에서 일하던 다른 노동자였다.
이재훈 씨는 “시키는 대로만 하다가 다치고 심지어는 목숨을 잃을 수 있단 사실을 젊은이들도 알아야 됩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김용균재단 권미정 사무처장은 “산재는 매일 생긴다. (노동자들이) 매일 다치고 아프다. 이선호 군 죽음 이후 (사고는) 현대제철, 현대중공업 노동자의 죽음 등 잘 알려지지 않는다. 일상의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느껴질 수 있는 것이다”라고 우려했다.
선호 군이 사망한 지 23일째. 가족들은 장례를 치르지도 못한 채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3일 이선호 군의 장례식장을 찾아 조문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가시설 안에서 일어난 사고인데, 사전에 안전 관리가 부족했을 뿐 아니라 사후 조치들도 미흡한 점들이 많았다”라면서 “노동자들이 안전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드렸는데, 송구스럽다”라고 사과했다.
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도 14일 오후 고(故) 이선호 군의 빈소를 찾아 "항만근로자의 안전관리를 좀 더 세심하게 챙기지 못했던 점 고인과 유가족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라고 했다
최항섭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산업현장 사고에 대해 언론들이 숫자나 통계 위주로 보도한다.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이 일이 자신의 일과는 무관한 것으로 여겨진다”라고 지적했다.
선호 군은 뉴스에 등장하는 통계나 수치 등에서도 전혀 드러나지 않는 ‘사고당한 노동자 1’이 아니다. 어느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위기라는 점에서 노동현장의 안전관리 문제에 경각심을 깨우는 게 이토록 어려운 일일까.
선호 군의 평택항 부두 사망 사고로 작업 중지 명령을 받은 원청 업체 ‘동방’은 사고 발생 12일 만인 이달 4일 노동부에 작업 중지 명령 해제를 요청한 것으로 드러났다. 제대로 된 안전 대책도 없이 작업 재개를 요청한 것이다.
이에 노동부는 사업장의 전반적인 안전 조치 계획과 유사 사고 방지를 위한 대책 등이 부족하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컨테이너 날개에 한 청년의 날개가 무참히 꺾였다. 돈보다도 숭고한 사람의 가치가 선호 군의 죽음과는 먼 일이 될까 싶어 착잡한 오늘이다. 더 많은 관심이 모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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