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발길이 끊긴 곳, 가로등 불빛이 닿지 않는 곳은 꽤 스산했다. 마을 주민들에게 '빈집', '쓰레기집', '귀신 나올 법한 집'으로 불리는 그 폐가에 한 남자가 살고 있었다. 동네에서 미스터리한 남자로 유명한 이였다. 그는 왜 폐가에 사는 걸까.
악취 나는 폐가에 음식이 배달된다?
MBC 실화탐사대 8일자 방송에서는 폐가에 사는 남자에 관한 내용이 다루어졌다. 소문의 진원지는 사람 사는 곳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모습이었다. 쓰레기가 많아서 발 딛기가 힘들고 냄새가 너무 심해서 이곳에 누가 생활할지 의문이었다. 그렇게 사람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곳에 분명 누군가 산다고 했다.
익명의 마을 주민은 그 폐가에 정말 사람이 살고 있다고 제작진에 제보했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라면 꼭 돕고 싶다고도 했다.
제작진이 그 마을에 찾아갔던 날, 폐가를 향하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이웃집 주민이었다.
이웃주민 C씨는 “김밥이랑 커피, 물 좀 아저씨에게 드리려고 한다. (음식 드린 지) 한 7개월 됐다”라고 했다.
그녀는 아저씨가 늘 끌고 다니는 자전거에 음식을 두고 간다고 했다.
이 주민이 폐가의 남자를 발견한 건 지난해 9월께였다. 남자는 따스한 봄에도 온갖 두꺼운 옷을 껴입고 다녔다. 더군다나 전기나 가스도 전혀 들어오지 않는 폐가는 그녀의 맞은편에 위치한 곳이라 자꾸 눈이 갔다.
제보자 C씨는 “맞은편에 살다 보니 자꾸 마음이 쓰여서 먹을 수 있는 것들을 아저씨 몰래 자전거 위에 놓고 와요”라고 했다.
제보자는 옷이나 목욕 등 도움을 주겠다며 우편함에 편지를 남기기도 했지만 이에 대해서는 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화려한 소문의 남자, 그의 진짜 정체는?
마을 주민들은 그에 관해 다양한 이야기를 했다. 남자가 시청 공무원이었다고 들었거나, 새만금 수질 의원으로 활동했다는 얘기, 대학 교수 하다가 어느 순간 저렇게 됐다고도 했다.
멀쩡한 직업을 가졌던 것으로 보이는 그가 상상을 뛰어넘는 모습으로 변한 이유는 무엇일까?
남자는 집주인의 신고로 경찰이 찾아와 출입을 막기 위해 쳐놓은 폴리스 라인까지 뜯고 들어가 여전히 폐가에 머무는 중이었다.
이른 새벽, 고요한 골목에 사진 속 남자가 나타났다. 익숙한 자전거를 끌고 고개를 푹 숙인 채 걷는 남자. 팔에는 마스크를 끼고, 그 위에 시계를 찼다. 반지도 끼고 있었지만, 옷은 남루했고 찢어지기도 했다.
그가 나타나기만 하면 동네 주민들의 시선이 온통 그에게로 향했다. 그가 어디론가 이동하더니 자전거에서 신문을 꺼내 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걷고, 멈추고, 하루 종일 그게 전부였다.
그러다 남자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제작진은 그의 자전거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운동화, 머그컵, 종이컵 등 거의 쓰레기라 할 법한 짐이 대부분이었다.
남자를 향한 동네 주민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냄새가 나서 미치겠다.”, “냄새가 진동하니까”, “냄새가 작렬한다” 등 악취에 관한 고역이 대부분이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무료급식소에서 사람들이 길게 줄 선 채 도시락을 하나씩 받아갔다. 그 때 폐가의 남자는 줄에 합류하지 못하고 기다리다 맨 마지막에서야 도시락을 받아갔다.
식당 관계자는 남자에 관해 “1년 열 두 달 똑같다. 저 옷에 자전거... 저렇게 입은 지 한 2년 됐고, 머리는 한 2, 3년 안 자른 것 같다”면서 “(남자를) 본 건 3년 전부터다”라고 했다.
식당 관계자는 “봉사자 모집할 때 (폐가의 남자가) 봉사도 하고 그랬다. 어느 날부터 주방에 들어서면 안 될 것 같은 상황이 왔다. 수양을 한다더라”라고 했다.
무료급식소 자원봉사를 했던 그 남자가 1년 뒤부터 이렇게 모습이 바뀌었다고 했다. 너무 갑자기 이상하게 변해버린 남자에게 동네 주민들이 도와주겠다고 손길을 내밀었지만 그때마다 남자는 거절했다.
여름엔 벌레가 들끓고 겨울엔 난방조차 되지 않는 곳에서 사계절을 보낸 남자는 제작진에게 “이런 모습 보면 충격받을 많은 이들에게 파급이 있기 때문에 안 보여주고 싶다”라고 했다.
남자에게 선뜻 꺼내기 힘든 과거가 있는 모양이었다. 제작진과의 대화에서 영어를 수시로 사용하며 정치와 경제, 사회적 지식까지 대화로 술술 풀어낸 남자는 유독 사적인 질문에 대해서만 함구했다.
남자는 실제 경력이 화려했다. 실화탐사대 제작진이 확인한 결과 그는 과거 한 대학의 건축 토목학부 학과에서 조교 생활을 2년하고, 시간강사로도 재직했다. 사업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 교회 관계자는 “(남자가) 아이가 4명 있다. 어떤 연유로 사업이 안 됐는지 모르겠지만 경제 활동이 안 되니까 힘들어졌다”라고 했다.
남자는 상황이 여의치 않자 폭력적인 성향을 보였고, 그로 인해 가정불화가 깊어지자 아이와 아내가 떠났던 것으로 전해졌다. 아내와 이혼 후 홀로 남겨진 남자는 그 후로 떠돌이 생활을 시작했다.
교회 관계자는 초라한 행색으로 다니는 남자에 관해 “그가 예수님의 제자처럼 하고 있다고 했다”고 전했다.
아이에 대한 그리움... "보고 싶은 사람이 많아 잠을 못 이루겠네"
남자의 누나는 제작진과의 전화통화에서 “(동생이) 죄지은 게 많아 고개를 들고 다니지 않는다고 했다. 그럼 밥은 왜 먹느냐라고 했더니 아이들 볼까 봐, 라고 하더라”면서 속상해했다.
떠난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한 모양인지 남자는 제작진에게 에릭 클랩튼(Eric Clapton)의 Tears in Heaven’을 듣자고 했다. 노래를 가만히 듣던 남자는 “슬프다”라고 했다.
2020년 9월 경부터 폐가에 머물며 지내는 남자는 현재 집주인으로부터 나가 달리는 요구를 받고 있었다.
실화탐사대 제작진은 김원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함께 남자를 만나러 갔다. "요즘 어떠냐"란 전문의 질문에 남자는 그저 “평안하다”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시련을 당연한 듯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
제작진과 전문의의 오랜 설득 끝에 남자는 병원 치료를 고민해보겠다고 했다. 마음의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남자는 병원에 가기로 마음먹은 날, 몸을 씻고 머리도 다듬기로 했다.
그에게 음식을 갖다 주던 제보자는 그의 머리카락 자르는 일을 맡아주었다. 너무 엉켜 덩어리가 된 머리카락을 잘라냈다. 남자에게 머리 손질은 무려 3년 만이었다. 새옷으로 갈아입는 건 제작진이 이틀 간의 설득 끝에 간신히 이루어졌다.
새옷을 입고 머리까지 단장한 남자는 제작진과 함께 칼국수 집에 들어가 식사했다. 남자는 본인이 대접하고 싶다며 돈을 꺼내 밥값을 지불했다.
남자는 병원에서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에 입원하기로 했다. 남자의 누나는 "제 동생 위해 (고생해주신) 제작진에 감사하고 눈물이 난다"라며 울먹였다.
병원에서 남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제작진과의 통화에서 “보고 싶은 사람이 많아서 잠을 못 이루겠네”라고 했다. 그러면서 “I wish I pray for your company and your members”라고 덧붙였다.
나락에 떨어졌을 때도 누군가의 관심 한 조각만 있다면 인간은 얼마든지 햇볕을 찾고픈 힘을 얻는다. 그의 앞날이 따스해지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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