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하나같이 이태원 압사 참사 이후 애도기간까지는 정치적 공세를 자제하기로 합의했다면서 이것이 마치 죽음에 대한 도의적 처사인 것처럼 이야기한다.
틀렸다.
왜 그날 밤 수많은 젊은이들이 안전할 수 없었는지 원인과 책임을 따지는 것은 이해를 위한 온당한 절차다. 사건 해결의 당연한 순리다.
사건이 일어난 뒤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장 증거보존과 관련자들에 대한 조사를 토대로 한 수사가 기본이다. 우선 가만히 있자는 것은 ‘말 맞추기’나 ‘인멸’을 위한 시간을 벌어주는 것과 다름없다.
물론 당리당략을 위한 정치적 싸움은 자제해야 하지만, 국민의 희생을 다룬 사건의 책임자를 묻는 게 어떻게 정치적 공세라고 못 박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혹시 프레임전환은 아닌가.
정치적 공세 자제를 처음 언급한 데 이어 그것을 지속적으로 주도한다면, 사건해결을 훼방하거나 지연시키기 위한 목적이 있는 게 아닌지 의심해야 한다.
안전할 권리를 뺏긴 국민의 희생 앞에 책임자 언급은 당연하다. 그러니 정치적 공세 자제라는 프레임에 갇혀 본디 초점이었던 사건 해결의 주도권을 빼앗기지는 않았는지 짚어봐야 한다.
사과는 없다. 이유는 뻔하다. 책임모면을 위해서다.
‘정치적 공세 자제’를 들여다봐야 할 두 번째 이유는 여기에 있다.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기간을 국가가 나서서 발 빠르게 정하고, 추모가 우선이라며 책임 부재의 의문 제기조차 정치적 공세라고 운운한다. 그러한 정치인들이나 언론사들의 태도는 매우 위선적이다. 아무도 사과하지 않는데 이에 대한 지적조차 없다.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할 국가가 뻔히 보이는 위기를 방치했다. 그것에 누구 하나 미안하다, 죄송하다 말하는 이가 없다.
그나마 나온 표현이라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유감’이다. 꽤나 적절치 않은 표현이다.
앞서 이상민 장관은 10월 30일 이태원 압사 참사 관련 브리핑을 통해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라면서 “경찰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다”라고 해명해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이튿날에도 이 장관의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
그는 31일 합동 분향소에 들른 자리에서 “역대 5, 6년 간 핼러윈 인파를 고려해 경찰력을 배치해 예년과 같은 수준이었다. 그것(경찰력 배치)이 (이태원 참사의) 원인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라며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그의 발언이 더욱 논란이 되자 행전안전부는 31일 설명 자료를 발표했는데 3줄짜리 내용의 요지는 이렇다.
‘재발방지를 위해서는 정확한 사고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만, 국민들께서 염려하실 수도 있는 발언을 하여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유감의 사전적 뜻은 ‘마음에 차지 아니하여 섭섭하거나 불만스럽게 남아 있는 느낌’이다.
국민들의 입장에서 쓰면 모를까 정작 사과해야 할 이상민 장관의 입장에서는 대단히 그릇되고 모자란 표현이다.
정치인들은 미안하다 또는 죄송하다는 말 대신 종종 유감스럽다는 표현을 쓴다.
저의 잘못을 오롯이 사과하기에는 자존심이 상해서이고, 책임이 따르는 것을 배제하기 위해서라는 걸 국민들은 뻔히 안다. 그러니 이번 이상민 장관의 3차원적으로 동떨어진 화법에 어이가 없을 수밖에...
윤석열 대통령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박희영 용산구청장, 관할경찰 등 이 정권의 사건 책임자들이 사과 대신 ‘주최가 없는 자율적 행사’로서 어느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주장을 반복한다. 언론이 적극적으로 이러한 주장을 보도하며 힘을 싣고 있다.
대신 CCTV 분석을 통해 토끼띠 머리띠를 한 자들이 밀었다는 주장을 확대하는 것에 치중하는 양상이다. 여기에 무언가가 사건 현장 바닥에 흘러 미끄러웠다는 주장과 유명인이 등장하여 한 번에 인파가 쏠렸다는 통신 등이 보태진다.
망가진 울타리 때문이 아니라 울타리를 빠져나간 망아지들 중 어떤 놈이 주동했는지 색출하려는 발악에 지나지 않아 우습기만 하다.
국가와 지도자들의 무책임한 모습은 대한민국에서 그리 낯선 일은 아니다.
2014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당시에도 비슷했다. 위기를 예상했음에도 방치한 어른들의 사과는 없었다. 위기가 발생한 순간에도 구하기는커녕 구조를 방해하기까지 한 사건 책임자들의 처벌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반성하고 사과할 줄 모르는 어른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다. 그래서 2022년 이태원에서 또다시 젊은이들은 목숨을 잃었다. ‘그러게 남의 나라 종교 축제가 뭐라고 놀러 나가서는’ 이라며 한심한 젊은이들 낙인을 찍고 고개를 주억거리게끔 국가가, 언론이 일부 확성기 역할을 한다.
진정으로 슬픔을 공감하는 자라면 사고 난 지 하루 이틀 만에 돈 얘기부터 꺼내지는 않는다.
의문을 제기하고 책임자들을 가리키고 그러한 과정이 보도되도록 놔두는 것이 지극히 상식적이다. 그것이 인간의 죽음에 대한 세상에 남겨진 자들의 미덕이다.
그러니 생각해보자. 현재 ‘정치적 공세 자제’를 주도하며 애먼 데 좌표를 찍은 세력은 매우 계산된 정치적 셈을 마친 이들은 아닌지, 사과 대신 침묵하는 것이야말로 정치적 위기를 의식해 벌이는 하나의 정치적 술수는 아닌지 말이다.
정치적 공세 자제라는 말로 진실을 가리려 해서는 안 된다. 어느 누구도 이 시기 희생자들을 비난하는 것은 물론 책임자들의 부재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을 매몰시키려는 시도는 결코 옳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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