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전 의원이 21일 탈당을 선언했다. 지난해 12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법안에 유일하게 기권표를 행사하면서 당의 징계 처분을 받았던 금 전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민주당을 떠나며'라는 제목의 입장문을 올리고 이같이 밝혔다.
금 전 의원은 “정치적 불리함과 인간적으로 견디기 힘든 비난을 감수하고 해야 할 말을 하면서 무던히 노력했지만, 더 이상은 당이 나아가는 방향을 승인하고 동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라며 “마지막 항의의 뜻으로 충정과 진심을 담아 탈당계를 낸다”라고 적었다.
그는 “공수처 당론에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징계처분을 받고 재심을 청구한 지 5개월이 지났고, 당 지도부가 바뀐 지도 두 달이 지났다”라며 “그간 윤리위 회의도 여러 차례 열렸지만 민주당은 아무런 결정도 내리고 않고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면서 불만을 드러냈다.
이어 “합리적인 토론도 없고, 결정이 늦어지는 이유도 알려주지 않았다”며 “그저 어떻게 해야 가장 욕을 덜 먹고 손해가 적을까 계산하는 게 아닌가 의심스러울 따름”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징계 재심 뭉개기’가 탈당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라며 “편 가르기로 국민들을 대립시키고 생각이 다른 사람을 범법자, 친일파로 몰아붙이며 윽박지르는 오만한 태도가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금 전 의원은 “집권여당이 비판적인 국민들을 ‘토착 왜구’로 취급한다면 민주주의와 공동체 의식이 훼손되고 정치에 대한 냉소가 더욱더 판을 칠 것”이라며 “탄핵을 거치면서 보수, 진보를 넘어 상식적인 세력들이 협력하고 경쟁하는 정치를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음에도 과거에만 집착하고 편을 나누면서 변화의 중대한 계기를 놓친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고도 적었다.
금 전 의원의 탈당 소식에 야권에서는 영입 의사를 드러내고 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오전 국회 내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금 전 의원을 "한 번 만나볼 생각은 있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 의원들의 금 전 의원을 향한 호의적인 글도 눈에 띈다.
조수진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민주당 내부에는 합리적이고 훌륭한 지인들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분들은 문제의식을 입 밖으로 내지 못한다"며 "금 전 의원을 응원한다"라고 했다.
박수영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의원의 소신 따위는 필요 없고 징계의 대상이 되는 정당에서 누군들 몸담고 싶겠느냐"라며 "부디 정치를 완전히 떠나지 말고 권토중래하시길 바란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조만간 우리가 함께할 날이 있을지도 모르니 그때까지 부디 건강하기를...."이라고 적었다.
국민의당에서도 안철수 대표와의 관계도 고려되나 금 전 의원 영입에 큰 반발이 없는 분위기다.
검사 출신의 금 전 의원은 2012년 대선에 출마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를 도우며 정치에 입문했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안 대표가 더불어민주당(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했지만 금 전 의원은 예상외로 민주당에 남으면서 두 사람의 사이가 조금씩 벌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아래는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전 의원 '탈당 선언문' 전문
민주당을 떠납니다.
공수처 당론에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징계처분을 받고 재심을 청구한 지 5개월이 지났습니다. 당 지도부가 바뀐 지도 두 달이 지났습니다. 그간 윤리위 회의도 여러 차례 열렸습니다. 하지만 민주당은 아무런 결정도 내리고 않고 책임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합리적인 토론도 없었습니다. 결정이 늦어지는 이유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당의 판단이 미래에 미칠 영향을 성실히 분석하고 고민하는 모습도 볼 수 없었습니다. 그저 어떻게 해야 가장 욕을 덜 먹고 손해가 적을까 계산하는 게 아닌가 의심스러울 따름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차라리 제가 떠나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징계 재심 뭉개기’가 탈당 이유의 전부는 아닙니다. 민주당은 예전의 유연함과 겸손함, 소통의 문화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했습니다. 국민들을 상대로 형사고소와 민사소송을 서슴지 않는 것은 김대중이 이끌던 민주당, 노무현이 이끌던 민주당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모습입니다.
다른 무엇보다 편 가르기로 국민들을 대립시키고 생각이 다른 사람을 범법자, 친일파로 몰아붙이며 윽박지르는 오만한 태도가 가장 큰 문제입니다. 거기에서부터 우리 편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하고 상대방에게는 가혹한 ‘내로남불’, 이전에 했던 주장을 아무런 해명이나 설명 없이 뻔뻔스럽게 바꾸는 ‘말 뒤집기’의 행태가 나타납니다. ‘우리는 항상 옳고, 우리는 항상 이겨야’ 하기 때문에 원칙을 저버리고 일관성을 지키지 않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깁니다.
이런 모습에 대한 건강한 비판이나 자기반성은 ‘내부 총질’로 몰리고, 입을 막기 위한 문자 폭탄과 악플의 좌표가 찍힙니다. 여야 대치의 와중에 격해지는 지지자들의 심정은 이해할 수 있지만, 당의 지도적 위치에 계신 분들마저 양념이니 에너지니 하면서 잘못을 바로잡기는커녕 눈치를 보고 정치적 유불리만을 계산하는 모습에는 절망했습니다.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저의 책임도 큽니다. 정치적 불리함과 인간적으로 견디기 힘든 비난을 감수하고 해야 할 말을 하면서 무던히 노력했지만, 더 이상은 당이 나아가는 방향을 승인하고 동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항의의 뜻으로 충정과 진심을 담아 탈당계를 냅니다.
독일의 정치학자 칼 슈미트는 “정치는 적과 동지를 구별하는 것”이라는 얼핏 보기에 영리한 말을 했지만, 그런 영리한 생각이 결국 약자에 대한 극단적 탄압인 홀로코스트와 다수의 횡포인 파시즘으로 이어졌습니다. 우리 사회가 그렇게까지 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집권여당이 비판적인 국민들을 ‘토착 왜구’로 취급한다면 민주주의와 공동체 의식이 훼손되고 정치에 대한 냉소가 더욱더 판을 칠 것입니다. 탄핵을 거치면서 보수, 진보를 넘어 상식적인 세력들이 협력하고 경쟁하는 정치를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음에도 과거에만 집착하고 편을 나누면서 변화의 중대한 계기를 놓친 것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정치는 단순히 승패를 가르는 게임이 아닙니다. 우리 편이 20년 집권하는 것 자체가 정치의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될 수도 없습니다. 공공선을 추구하고 우리 사회를 한 단계씩 더 나아지게 하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정치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선의를 인정해야 합니다. 상대방이 한 일이라도 옳은 것은 받아들이고, 스스로 잘못한 것은 반성하면서 합의할 수 있는 영역을 넓혀나갈 때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게 됩니다. 특히 집권여당은 반대하는 사람도 설득하고 기다려서 함께 간다는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1987년 대선 때 생애 첫 선거를 맞아 김대중 후보에게 투표한 이래 계속 지지해왔고, 6년 전 당원으로 가입해서 대변인, 전략기획위원장 등 당직을 맡으며 나름 기여하려고 노력했던 당을 이렇게 떠나게 되었습니다. 민주당에 있는 동안 고마운 분들도 많이 만났고 개인적으로 크게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함께 일한 분들께 마음속 깊이 감사드립니다. 민주당이 예전의 자유로운 분위기와 활기를 되찾고 상식과 이성이 살아 숨 쉬는 좋은 정당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모든 분들의 건승을 빕니다."
※ 금태섭 학력, 경력사항
■ 학력
여의도고, 서울대학교 법대 학사, 코넬대학교 대학원 법학 석사, 서울대 법대 박사 수료
■ 경력
1992년 제34회 사법시험 합격
2013년 새정치 추진위원회 대변인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 대변인
2016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부의장
2016년 제20대 국회원(서울 강서구갑/더불어민주당)
2017년 제20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간사
2018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부대표
2019년 제20대 국회 후반기 윤리특별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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