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맛

요양병원을 나와 '사과빵'을 외치다!

돌풀 2020. 6. 9.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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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월, 요양병원에 장기 입원 중이신 할머니를 모시고 안동으로 향했었다. 거동을 못한 상태로 지낸 지 3년 여. 오랜만의 외출임에도 그녀는 안동휴양림 방문을 한사코 마다하셨었다. 몇 시간을 달려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었겠지만 자식과 손주들이 불편할까봐 고개 젓는 마음임을 모를 리가 없었다.

 

여든을 훌쩍 넘긴 노인은 많이 달라졌다. 과거 대장부처럼 다부지던 목소리는 기운을 잃었고 총명하던 눈빛은 희미해진 시력과 잦아진 눈물 탓에 꽤나 슬퍼 보이기까지 했다.

 

할머니만 괜찮으시면, 자식 손주들은 괜찮답니다!

휠체어를 차에 싣고 결국 할머니의 시골여행을 감행했다.

안동호가 바로 보이는 휴양림에서의 2박3일.

 

 그녀는 자주 웃었고, 잘 드셨다. 화장실 변기에 직접 가서 앉지 못한다는 사실이 인간을 얼마나 굴욕적으로 만드는지 모른다는 할머니. 늘 기저귀에 의지해 용변을 보느라 간병인 눈치를 보는 게 고역이라고 하셨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이날만큼은 딸들과 손주들이 많은데 뭐가 걱정인가. 전복죽과 장어탕, 거봉, 멜론 등 맛난 음식을 조금씩 맛보는 할머니의 모습을 오랜만에 보는 게 참으로 감사했다. 

 침대생활에서 음식을 먹고 소화가 되면 뭐 얼마나 잘 될까. 그래서인지 그녀는 기름지고 포만감이 드는 음식은 자제를 많이 해오셨던 것 같다. 휴양림에서의 마지막 휴식을 마무리하고 월령교 부근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안동사과빵을 샀다. 불그스름하니 앙증맞은 사과빵이 참 예뻤다. 차에서 잠시 기다리는 할머니에게 사과빵을 까서 드렸다. 한 입 베어 문 그녀의 첫마디는 이것이었다.

"더 없나?"

"맛있어요?"

"어. 간병인, 간호사 주게 더 사온나."

 

달지 않은 밤 앙금을 소로 채운 사과빵 맛이 맘에 들기도 했지만, 병원 식구들과 나눠먹을 생각이 번뜩 드셨던 모양이다. 풋사과분말이 들어서 사과향도 조금 나는데 시골에서 쌀농사며 과일농사를 짓고 살아온 할머니는 그 싱그러움을 더불어 느끼셨을까.

 

결국 개별포장된 사과빵 8개들이 (1만2천 원) 세 상자를 더 샀다. 다행히 유통기한은 상온에서 두 달이라고 하니 금세 상할 염려는 없었다. 개당 94.9Kcal.  커피와 먹기에 좋을 것 같아 서울에 가져올 것도 따로 샀다. 집에서 다시 사과빵을 꺼냈다.

 

음식은 눈으로 먼저 먹는다더니  색 한 번 기가 막히게 입었구나 싶은 생각에 사과빵을 물끄러미 보았다. 그런데 사과꼭지는 뭘로 만든 걸까? 풀색 같은 꼭지마저 사과빵 오목한 곳에 잘 자리 잡은 게 만듦새의 완성도가 높아 보였다. 

사과 꼭지를 쏙 뽑았다. 세상에나. 호박씨?! 노래가 생각났다. '사과 같은 내 얼굴 예쁘기도 하구나.... 호박 같은 내 얼굴 우습기도 하구나...'

 

누가 사과를 예쁘고 호박을 그렇지 않다 대조하나! 호박씨를 꺼내야만 사과빵이 완성된다는 걸 과거 그 냥반은 몰랐던 게지. 호박씨 까듯 사과빵에 은근슬쩍 찔러 앉은 호박씨에 새삼스레 비죽 웃음이 났다.

 

양으로는 아쉬운 듯하지만 커피 타임의 한 입 간식으로는 그만인 안동사과빵. 총평을 하자면,

 

"고것 참 예쁘다. 맛나다. 웃음 난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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