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특혜 비리의 온상으로 지목된 부산 해운대 초고층 주상복합건물 엘시티와 관련해 시행사가 작성한 리스트의 전체 882세대 중 108세대 당첨자란이 빈칸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름이 없는 호수는 전망이 좋은 위치가 대부분이었던 점으로 미루어 대부분 ‘로비용’으로 추측되며 박형준 부산시장 일가도 이 중 두 세대를 보유한 것으로 드러났다.
엘시티 당첨자 개인정보 담긴 문건, 시행사가 외부에 유출!
부동산 중개업자, 해당 문건 사들인 뒤 당첨자에게 연락해 거래 유도
2016년 엘시티 특혜분양이 처음 제기된 뒤 총 2차례의 검찰 수사가 진행되었다. 수년이 지났지만 이영복 회장이 총 43명에게 특혜 분양 혜택을 줬다고 인정했음에도 단 22명 만을 제외한 나머지는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그런데 올해 초, 엘시티 특혜 분양 정황이 추측되는 것으로 이른바 ‘(이영복) 회장님 문건’이라 불리는 ‘엘시티 문건’이 경찰에 제출되었다. 엘시티 비리 의혹 사건을 파헤칠 단서가 등장한 것이다.
MBC 스트레이트 제작진은 2015년 당시 비서실 관계자들이 작성한 엘시티 아파트 882세대의 분양권 관련 ‘당첨자 리스트’를 단독으로 입수해 25일 방송에서 관련 내용을 보도했다.
스트레이트에 따르면, 엘시티 분양권 당첨자 리스트에는 당첨자 이름과 전화번호, 아파트 구입 또는 판매 여부, 대출 계획 여부 등 개인 상세 정보가 기록되었다. 이 리스트는 어쩐 일인지 이듬해인 2016년 엘시티 주변 부동산 중개업소들에 본격적으로 공유되었고 거래에 활용되었다.
부동산 중개업자 A 씨는 “10월 초쯤 되니까 여기 부동산들이 좌르륵 들어오는 거예요. 다 이렇게 들어온 사람들은 다 (분양권 당첨자) 명단을 사서 들어온다더라고요. 그래서 아 명단을 사는구나…”라고 했다.
A씨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분양을 담당한 시행사가 당첨자의 개인정보가 담긴 민감한 문건을 외부에 유출했다는 말이 된다. 부동산 중개업소는 이 문건을 사서 분양권 당첨자들에게 연락한 뒤 거래를 제안하고 거래가 이루어질 경우 수수료 수입을 올린 것이다.
엘시티 문건, 분양 882세대 중 108세대 빈칸인 이유는?
엘시티 당첨자 리스트 확인 결과, 총 882세대 가운데 108세대가 이름이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구체적으로, B동의 3호와 4호 라인 34세대 그리고 60층에서 84층 사이 32세대 등 해운대 해수욕장 전망을 감상하기에 가장 좋은 위치의 세대가 이 108세대에 포함돼 있었다.
당시 108세대는 부동산 중개업자들의 거래 중개 대상에 포함되지조차 않았다. 이에 일부 중개업자와 시행사 관계자는 이를 ‘로비용’으로 짐작하고 있었다.
부동산중개업자 B씨는 "시행사에서 명단 깨끗하게 '대출했다', '자납했다', '전화번호', '이름' 이렇게만 유출됐는데, 비워놓은 거는 자기들은 다 알고 있으니까 굳이 노출시킬 필요가 없어서 안 적어 놨지 않겠나"라고 했다.
당시 엘시티 분양업무를 대행했던 업체 대표 최모 씨도 "공란은 줄 사람한테 사전에 다 맞춰놓은 거고 전부 확정자가 있던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X동에 X호 라인에 저층도 공란이었는데 이영복 회장의 가까운 사람이 ‘나는 저기 들어갈란다’해서 원했던 게 있었다”라며 “이 회장 쪽에서 작업을 해서, 자기들 거는 먼저 뺐다. 공란을 확정 지어 놓고 나머지는 밖으로 돌린 거다"라고 증언했다.
주식회사 엘시티 측은 해당 문건과 관련해 직원 일부가 업무용으로 작성했을 수는 있지만, 회사차원의 공식적인 문서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직원들 역시 해당 문건을 부동산중개업소에 유출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특히 분양권 총 882세대 가운데 빈칸이었던 108세대와 관련해 엘시티 관계자는 '회사 차원 문건이 아닌 만큼 답하지 않겠다'라는 입장을 전했다.
엘시티 문건 명단에 이기중 변호사, A기업 이모 대표, 박형준 일가!
박형준 부산시장 가족, 엘시티 문건 공란 108세대 중 2세대 입주
MBC 스트레이트 제작진은 108세대 등기부등본을 분석했다. 그중 눈에 띄는 일부 인사들이 있었다.
▶ 부산고등법원장 출신 이기중 변호사
▶ A기업 이모 대표
▶ 이영복 회장 부인 박모 씨
▶ 이영복 회장 딸
▶ 박형준 부산시장 아들과 딸
먼저, 부산고등법원장 출신 이기중 변호사가 108세대 중 한 세대 주인으로 자리를 차지했다. 이기중 변호사는 ‘이영복 회장님 문건’에도 이름을 올린 인물이다. 이 변호사가 분양계약을 체결한 건 2015년 10월 31일이었는데, 그 날은 사전분양 예약자만 계약이 가능한 날짜였다.
1순위와 2순위 당첨자 계약이 끝난 뒤 남은 세대에 한해 사전분양 예약자들의 계약이 가능하다. 그런데 이 변호사는 사전분양 예약자도 아니었다.
역시나 회장님 문건에 이름을 올린 A기업 이모 대표도 사전 분양 예약자가 아니었지만 그 시기 엘시티 분양 계약을 맺었다. 시행사의 입김이 작용한 특혜로밖에 짐작되지 않는다.
108세대의 등기부등본에 이름을 올린 이는 이영복 회장의 부인과 딸도 있었다. 이영복 회장의 부인은 보유한 분양권을 지난해 초 1억 6천만 원의 웃돈을 받고 판 것으로 드러났다.
박형준 부산시장 일가도 108세대 일부의 주인이었다. 지난 부산시장 보궐선거 이전 그의 부인과 아들, 딸 등이 연관된 엘시티 분양권의 수상한 거래 정황이 불거진 바 있다. 박형준 시장은 그때와 마찬가지로 엘시티 분양권 당첨 및 거래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엘시티 아파트 위 아래층인 1703호와 1803호를 나란히 보유한 박형준 일가의 거래 정황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MBC 스트레이트 제작진은 박 시장의 아들에게 분양권을 판 이모 씨의 주소지로 향했다. 그러나 지은지 꽤 오래된 단독주택 내부에서는 초인종을 눌러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제작진은 박형준 시장 측에 아들과 딸의 분양권 거래가 담긴 2015년 당시 엘시티 분양 계약서를 공개할 의향이 있느냐라고 물었다.
박 시장 측은 “사적인 거래라 공개할 수 없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앞서 박형준 부산시장은 “아무런 의혹 없이 엘시티 아파트를 구입했지만 서민들 정서에 맞지 않는 집에 산다는 도덕적 비판에 수긍하기 때문에 엘시티를 적기에 처리하겠다. 어떤 수익이 있다면 다 공익을 위해 쓰겠다”라고 밝힌 상태다.
현재 박형준 시장 부인이 소유한 엘시티 아파트는 5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 시민단체들은 당시 엘시티 분양 비리사건을 수사한 검사 10여 명 공수처에 고발했다.
시민단체 측 법률대리인인 정상규 변호사는 “검찰로서는 차명으로 받았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하는 게 일반적이다”면서 “그럼에도 이게 ‘그 명단에 직접 유력인사들의 이름이 없다’라고만 발표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그 (엘시티 관계자 및 시행사) 사람들과 유력인사들이 어떤 관계인지 제대로 수사하거나 살펴본 흔적도 없었다”라며 “수사할 의지가 없었던 건 아닌지 의심이 든다”라고 지적했다.
엘시티 허가부터 분양까지 의혹 덩어리
엘시티는 애초 아파트가 들어설 수 없는 곳에 뿌리내리도록 개발이 결정된 것뿐만 아니라 고도제한도 수월하게 풀리면서 결국 해운대 전망을 품은 초고층 빌딩으로 완공되었다.
- 2006년 해운대 관광리조트 개발 결정
- 2007년 시행사 엘시티 선정
- 2008년 주거시설 건축 허용
- 2009년 고도제한 해제
부산 해운대 초고층 주상복합건물 엘시티 건설을 둘러싼 온갖 편법과 특혜를 포함한 비리 의혹 등이 이번 경찰 수사와 공수처에서 제대로 밝혀질 지 주목된다. 특히 박형준 부산시장 일가의 엘시티 분양 및 수상한 거래 의혹 역시 진상이 제대로 드러날 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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