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여름, 지영 씨는 집에서 낯선 흔적들을 발견했다. 외출했다 돌아오면 묘하게 달라진 집안의 모습에 공포를 느꼈다. 그 변화들을 일지에 기록해 놓고 사진도 찍어놓았다.
어느 날, 퇴근하고 귀가한 지영 씨는 소름끼치는 장면을 목격했다. 침대에서 의문의 라이터가 발견되는가 하면, 빼놓지 않은 드라이어 콘센트도 빠져있었다. 누군가 남겨놓은 화장실의 신발 자국도 있었다. 과연 이런 짓을 벌이는 자는 누구일까?
한 달 넘게 그녀를 괴롭히던 흔적은 그녀의 헤어진 남자 친구 것이었다!
지영 씨는 박 씨와 100일 정도 만나다 헤어졌다.
이별 이유는 박 씨의 지나친 집착 때문이었다.
지영 씨가 그에게 이별을 통보하자 박 씨는 도를 넘어선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지영 씨와 헤어진 뒤 박 씨는 그녀의 집 계단에 숨어들었다.
그는 퇴근한 그녀가 집에 들어가는 모습을 몰래 훔쳐보며 현관 비밀번호를 외워두었다.
누군가의 무단침입 사실을 알게 된 지영 씨는 비밀번호를 바꿨다.
마침 그날 비밀번호를 세 차례 누르며 침입을 시도하던 박 씨가 현장에서 붙잡혔다.
출동한 경찰에게 박 씨는 무단침입 사실을 순순히 시인했다.
그는 현행범이 아닌 임의동행 형식으로 경찰과 이동한 뒤 금세 풀려났다.
지난 여름, 지영 씨는 CCTV를 끄고 사라졌다! 왜?
지영 씨의 아버지는 아직도 지난여름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고 했다.
딸을 괴롭히던 박 씨가 생각보다 너무 가까이 숨어있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지난해 8월 초쯤, ‘주거침입’ 문제로 딸이 경찰에 신고했단 사실을 듣고 8~9일 정도 딸의 집에 머물렀다.
아버지는 현관 안팎에 CCTV를 설치하고 딸을 지켰다.
일주일여 지나도록 아무 일이 없자 아버지는 직장이 있는 청주로 갔다.
지영 씨는 이튿날 저녁, 집안으로 들어서며 CCTV화면으로 다가서더니 화면을 가려버렸다.
현관문을 나선 지영 씨가 주저 없이 올라간 곳은 계단을 지난 옥상이었다.
아버지가 떠난 지 이틀 만에 지영 씨는 그곳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작 29살이었다.
지영 씨는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
박 씨는 지영 씨와 결별 후 한 달간 집요하게 그녀를 쫓아다녔다.
직장 때문에 옮기지도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야만 하는 지영 씨에게 그 남자에 관한 공포는 상상 이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영 씨의 친구는 “3층이었거든요 지영이 집이. 한 층 계단 올라가면 옥상이고 옥상 계단에서 집이 보였어요. 그 남자가 아침부터 저녁 퇴근 때까지 거기서 지영일 기다렸어요”라고 했다.
건물 계단에 박 씨가 있었던 날도 없었던 날도 지영 씨의 머릿속에는 박 씨가 공포로 자리한 듯했다.
박씨 "헤어진 지 보름도 안 돼 다른 남자 만나... 헤퍼"
'죽음과는 상관없다' 주장!
제작진은 박 씨를 찾았다.
처음 예민한 반응을 드러내던 그는 “(지영 씨와) 교제기간 중에 단 한 번도 집에 초대받지 못해서 순수한 호기심에 (들어갔다)...”라고 무단침입 사실을 해명했다.
라이터를 떨어트린 것도 실수였다고 했다.
그는 이어 “연락을 안 한 지 열흘 만에 지영이가 죽어버렸다”라며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박 씨는 그녀가 자신과 헤어진 지 보름 만에 다른 남자를 만났다고 주장했다.
지영 씨가 적어놓은 일지에 따르면, 그녀가 박 씨의 연락을 차단하자 지인들에게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과거 사귀었던 지영 씨의 남자친구에게까지 박 씨는 전화를 걸어 왜 헤어졌는지를 묻기도 했다.
제작진이 그에게 연락처를 어떻게 얻었는지 묻자 “쓰레기 봉지를 들었는데 배달 영수증에 전 남자 친구 번호가 찍혀있었다. 어떻게 헤어졌는지 연락해보자는 마음으로...”라며 협박은 전혀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살을 했다는 건 그전부터 뭔가 안 좋은 일이 있었고 갑자기 겹치니까 모든 게 거기서 터진 거지. 저는 저 때문이라 생각하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여자 혼자 사는 집에 남자가 몰래 들어오고 쓰레기 버리러 나가면 나타나고...” 딸이 느꼈을 공포감을 가늠하는 것조차 힘겨워했다.
경찰이 출동 당일 박 씨와 임의동행 한 뒤 풀어준 것은 범행 미수였고 그가 혐의를 인정했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한 전문가는 ”도어록을 세 번이나 눌렀다 실패했는데도 포기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이 범죄의 현행성이다. 숨어있었던 건 잡히지 않고 도망가려던 건데 현행범 요건이 충분히 충족하다는 것이다”라고 경찰의 안이한 대응을 지적했다.
언젠가부터 아버지의 술친구가 되어주었던 딸 지영 씨.
지영 씨를 죽음으로 몰고 간 한 남자의 잘못된 집착.
그 비극의 현실을 살아가야만 하는 아버지는 강가에 홀로 선 채 술을 마셨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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