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빨리 결혼하고 싶어요."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서 도란도란 살겠다던 그녀의 단꿈을 현실로 연 첫날. 최근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내가 그동안 봐온 신부들 중 단연 으뜸이었다. 아름다웠다.
멋진 배우자를 만났구나. 부부가 닮는다는 말은 비단 외모만을 뜻하는 건 아닌 듯하다. 그녀도 그도 마치 대학내일의 표지모델처럼 예쁘고 수수한 분위기가 매우 닮아 보였다.. 드레스와 한 몸이 된 천사처럼 뽀얗게 웃는 그녀의 얼굴이 환하니 빛났다.
"차라리 논문 쓸래요. 결혼 두 번은 못 하겠네요."
식을 마친 뒤 푸념하듯 말하고는 웃어버리는 그녀의 말에 나 역시 웃음이 터졌다. 과정을 보면 그녀의 말은 사실 이해할 만도 했다. 아무것도 하지 말자, 굳게 약속했던 양가 사이에 약속이 깨지는 건 아쉬움이 큰 입장을 드러내는 쪽이 생기면서다. 아무 것도 하지 말자던 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섭섭하지로 변하고 마는 변수의 연속. 결혼준비가 힘들다는 건 매우 단순했던 일이 심각한 체증에 가슴을 치는 것 같은 일로 변하기 때문일 거다.
'내 딸 결혼시킬 때는 혼수 비용 어마어마하게 들었는데... 그래도 명품백은 받아야 하지 않나?', '예물은 내가 골라줄게. 네들보다 내 안목이 더 낫지 않겠니?', '옛 전통식에서 어른들이 강조하던 침구 종류나 물건들이 다 의미가 있는 거야. 하나 하나 다 기본은 해야 그래도 의미가 있지...'
과거 자신의 딸 결혼 혼수까지 들먹이는 건 보상이라도 받겠다는 심산인가. 예비 시어머니의 말에 그녀는 감정이 몹시 상했단다. 아무 상관도 없던 시부모님의 과거 시절 씀씀이를 부담으로 떠안아야 할 이유가 없잖은가. 납득이 되지 않더란다. 연기를 하며 벌어놓은 돈은 많지 않았다. 남자친구와 둘이서 형편껏 집과 신혼살림을 꾸려보자고 얘기를 마쳤더랬다. 모든 걸 둘이서 소소하지만 알뜰하게 시작해보자고 결심했었더랬다.
하지만 부부의 손가락에 끼워질 반지는 시어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결정됐다. 아들은 어머니의 명품가방 욕심을 만류해 보기도 했지만, 예비며느리는 결국 백화점에 진열된 고가의 명품가방을 사드렸다. 기분이 좋아진 시어머니는 명품을 받았다며 친구들에게 커피를 쏠 테니 다들 만나자고 전화를 돌리셨단다. 그녀는 평생 명품이라고는 손목과 어깨에 둘러본 적도 없는 친정엄마 생각이 났다고 했다. 명품이 가슴 한 편의 멍이 되는 순간이었다.
나나 우리 엄마도 못 들어본 걸 혼수랍시고 지르는 게 잘하는 짓인가...
결국 그녀는 기왕 이렇게 된 거 큰 맘먹고 친정엄마도 같이 해드리자, 해서 명품가방을 선물했단다. 아들이 결혼을 결정하고 나니 우울증이 왔다는 예비 시어머니. 그럴 수도 있다, 생각했지만 하루 이틀이 지나자 감정은 혼란스러움으로 변했다. 이미 그와 함께 머무르는 임시 신혼집에 시어머니가 찾아와 일주일씩이나 머무른 일은 그럴 수도 있다고 해야 하나 싶었던 거다. 학교 발표 준비와 레포트 때문에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면서 결혼 준비에다 의도치 않게 너무 빨리 가까워진 시어머니를 신경 쓰기까지... 그녀의 나날은 바빴고 에너지는 급속히 소진되었다.
사위될 사람에게 임플란트부터 해달라는 예비 장모의 뜬금없는 요구로 끝내 파혼하고 말았다는 지인의 사연을 들은 적 있다. 아들 가진 부모나 딸 가진 부모의 '결혼을 빙자한 거래'를 목도하며 난 이따금씩 깊은 한숨을 흘렸다. 최소한 퉁치거나 남는 장사가 되어야만 하는 보상심리가 발동하지 않고서야 ‘명품’ 말이 나올 수 있을까. 전통이라는 아름다운 단어를 그저 평균치를 웃도는 이불과 식기세트 꾸릴 이유에나 갖다 붙이다니...
사람의 앞날은 알 수 없다. 모든 사람 마음속을 훤히 알 수 없고 모든 욕심을 충족하기란 어렵다. 좋아하는 사람 주위에는 좋은 게 많지만 그렇지 않은 그 무엇도 있다는 걸 알아가며 우리는 한 걸음씩 나아간다. 그 우여곡절이 모두에게 괜찮은 성장통이 되기를 바란다. 어제 그녀로부터 전화가 왔다. 도란도란 정답고 어여쁜 가정 만들기에 충분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그 기운이 쭉 이어지길, 결실이 움터서, 한 때의 힘듦이 그저 작은 에피소드에 지나지 않은 일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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