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자협회가 고 박원순 서울특별시장에 관한 질문에 욕설을 했다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사과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13일 발표했다. 이미 강훈식 수석대변인이 이해찬 대표의 발언과 관련해 사과한 바 있다. 하지만 진정성 있는 사과라면 이 대표 본인이 직접 해야 한다는 게 요지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더민주씀 유튜브 갈무리
성명서에서 '취재 장소가 질문 내용에는 다소 부적절한 곳일 수도 있다'고는 언급했다. 그렇다면 이 대표로부터 저속한 비어로 모욕 당했다는 그 취재 기자는 질문 장소의 부적절함을 나중에라도 인지한 것에 관해, 무례함에 불쾌감을 느꼈을 이 대표에게는 사과했는지 의문이다.
성명서에서 '기자는 국민의 알 권리와 사회 정의를 위해 진실을 보도할 책무가 있기 때문'이라고 당시 질문의 당위성을 설명한다. 그런데 말이다. 국민의 알 권리를 운운한다는 게, 때로는 참 역겹다. 사람이라면 때와 장소에 따른 최소한의 예의는 차릴 줄 알아야 한다.
12년 전이었나. 연기자로 수십 년 세월을 지낸 한 배우가 세상을 떠났다. 어느 장례식장이든 유명한 사람이 고인이 되었을 때 국민 누구나 알 만한 조문객들이 몰린다. 당시 그곳 역시 그러했다. 현장에 도착하니 기자들이 장례식 특별호실 입구 양쪽으로 길게 자리를 잡은 채였다. 취재기자들은 바닥에 앉아 노트북을 두드렸고, 사진 기자들은 작은 사다리에 엉덩이를 걸치거나 옆에 선 채 휴대폰을 보며 조문객을 기다렸다. 그러다 연예인이라도 들어선 순간 이들은 마치 먹잇감을 발견한 사람들처럼 우르르 몰려가 질문을 쏟아냈다. 사진을 마구 찍어댔고 그들이 나갈 때까지 열린 입과 셔터는 멈추지 않았다.
뭐, 그들과 섞인 자리에서 처음에는 그럴 수 있다 생각했다. 국민의 알 권리라니까.... 장례식장에 어떤 연예인이 왔는지 궁금해하는 국민들도 있다니까... 그런데 눈이 벌게져 나온 조문객이 입을 꾹 다물고 걸음을 옮길 때는 눈치라도 보는 게 도리다. 굳이 끝까지 쫓아가 심경을 거듭 묻는 광경이 황당하기만 했다.
사람이 죽었는데 심경? 슬프겠지.
다 안타깝겠지. 서글프겠지. 그립겠지. 더 있다 가지 싶겠지.
매번 보아도 이해되지 않는 게 하나 더 있었다. 연예부 기자 일부는 왜 항상 장례식장에 맞는 옷차림을 준비하지 않는가였다. 빨강, 파랑 맨투맨에, 노란 체크셔츠나, 블루진, 운동화... 도대체 그곳이 패션쇼장 취재인지, 가수 콘서트 취재를 온 건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세 번째는 그들의 귀가 모습이었다. 동영상, 사진, 취재 기자로 이루어진 한 팀은 오랜 시간 장례식장을 지키다 때가 되면 같은 매체 기자들과 교대했다. 업무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인데, 조문 정도는 할 수 없는가. 언론에 몸담은 기간의 차이야 있겠지만 적어도 일하는 동안은 늘 인터뷰의 대상, 기사의 주인공이었던, 업무의 소통 관계인 사람이 떠난 자리다. 돌아가신 이의 장례식장 문앞만 지키다 갈 것이 아니라 업무가 끝났다면 조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은가 하는 의문이었다.
한 사진 기자에게 옷차림과 조문, 또 굳이 저렇게까지 촬영을 해야 하느냐고 질문한 적이 있었다. 취재관행을 바꿀 순 없느냐는 지적이었다. 그는 선배들한테 말해봤자 뭐 크게 바뀌지 않을 것 같으니까.... 라는 답을 내놓았다. 연예계 일한 지 10년이 넘었다는 지인인데 그렇게 한심하고 무책임해 보인 적이 없었다.
몇 년 지나지 않아 장례식장 촬영은 '대표기자단'으로 꾸린 소수 기자에 의해 사진 촬영이 이뤄지는 등 과잉 취재가 자제되었다. 다행히 장례식장이라는 특별성을 고려해 취재관행 기류가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 이 익숙하면서도 어이없는 표현에 혀를 내두른다. 국민의 알 권리?
인간의 죽음과 남은 자의 비통함에 올라선 국민의 알 권리 그게 다 뭐냐!
'사과?'
그러한 취재가 당연하다 생각하는 사고방식이 안타깝다. 그곳에서 터진 입이라고 거름없이 쏟아낸 질문에 기분 나쁜 나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사과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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