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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간소음(복도) 해결 어떻게?

돌풀 2020. 7. 16.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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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아파트는 층간소음이 심하다. 

 천장에서 들리는 생명의 신호는 기본이고, 아래층 TV 소리도 중계된다. 심지어 야간에 계단을 오르내리는 누군가의 발소리는 거의 판타지 영화 속 거인의 존재감 같달까. 

 

몇 달 전, 지방 부모님 집에 갔을 때였다. 그 아파트는 지은 지 20년이 훌쩍 넘었는데,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 높이 건물이었다. 장점이라면 윗층일수록 날마다 장딴지를 단련하기 좋은 곳이었다. 반면 노인들에게는 팔다리가 후들거리는 에베레스트나 다름없는 보금자리였다.

 

참는 것도 한두번이지, 속에서 욱 하고 짜증이 터진 건 어느 날 새벽이었다. 새벽 2시가 다 돼 가는 시각, 한둘도 아닌 팔팔한 느낌의 발걸음들이 오르락내리락 거듭되었다.

 

'어느 병원 코드블루 싸인이라도 터졌냐!'

Pixabay

요란한 발소리가 계속되자 1층에 잠자코 있던 개마저도 짖어대기 시작했다.  5층 아파트는 개소리와 발소리가 섞이면서 '개발개발' 합주가 계속되는 것만 같았다.

 

오늘만 이러겠지....

 

아니었다. 이틀, 삼일... 

 

결국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문구멍으로 밖을 보았다. 들어봐야 스물 둘 셋 됐을 법한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내려갔다가 올라가기를 반복했다. 부모님 얘기로는 5층에 대학생이 산다는데, 그의 친구들이 합숙을 하는지 하숙을 하는지 전에 없던 심야 소음이 잦아졌다는 것이다. 

 

그들은 늦은 시간에 귀가했고, 새벽이면 어김없이 1층에서 담배 피우기 릴레이를 하는 듯했다. 젊은이는 미래의 등불인데,  '요 싹아지 없는 것들의 아지를 어떻게 끄집어내나...'

 

       ★아지(兒枝) : 새로 나온 연한 줄기 / 싹수 :  어떤 일이나 사람이 앞으로 잘될 것 같은 낌새나 징조

 

경찰서에 연락해 문의 했더니, 계단 소음은 층간소음의 영역이 아니라 출동 건이 아니라는 답이 돌아왔다. 나가서 훈계라도 했다가는 꼰대 너 어쩔 건데, 하며 등불들에게 등이며 볼이며 줘 터지지나 않을지 무서웠다. 그렇게 머릿속으로만 눈물 쏙 빠지게 혼구녕 내는 상상을 하며 꼴딱 날을 새 버렸다.

 

퀭한 눈을 한 채 오전 내내 생각했다.

 

'다가오는 새벽을 이리 맞을 수는 없어!'

 

곰곰이 생각한 끝에 펜을 들었다. 포스트잇 10개에다 같은 문장을 채우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초면에 조심스러운 부탁을 좀 드릴까 해요. 이 건물에는 아침 일찍 나가야 해서 밤늦은 시간 취침 중인 분도 계시고, 낮에도 야간근무 이후 들어와 주무시는 분이 있는 걸로 아는데요. 계단 오르내리는 소리와 문 닫는 소리가 킹콩의 성난 발걸음 같아 건물이 무너질지 너무 걱정이 된답니다. 그래서 심야에는 계단을 오가실 때 사뿐히 지르밟듯 스스로 감질 감질 해주시면 여러분 앞날에 묵직한 성공이 찾아오기를 담배 스무 가치의 필터겹 수만큼 열심히 빌어볼까 합니다. 같은 주민으로서 이런 부탁이 앞선 점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이렇게 낸 서툰 용기를 부디 이해해주세요.'

 

그래, 잘 썼어. 이정도면 호소력 쩔어.

 

1층부터 5층까지 9개 세대의 문 앞에 포스트잇을 붙였다. 마지막으로 글쓴이가 마치 내가 아닌 듯... 우리 집 현관에도 포스트잇을 무심하게 툭 붙였다. 그날 새벽 싹아지 없어봬던 젊은 피들이 귀가하는 듯했다.

 

탁탁, 척척, 처벅처벅... 불길했다.

 

개발개발 하겠구나. 그래서 그렇게 재개발, 재개발 하는건가.

 

그런데.......

 

그들의 싹수가 노란 줄 알았더니 아닌 모양이었다. 아지들이 돋아나기 시작했는지, 소란이 덜했다. 

 

뭐지....... 역시 먹혔구나. 그래, 그들도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이었어.

등불을 밝힐 기름 정도는 머리에 담고 사는 젊은이들이었던 거야.

 

다음날, 가뿐한 기분으로 외출했다 귀가했다. 아버지는 식사 중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어제는 대학생들이 안 들어온 모양이더라."

"?! 온 것 같던데..."

"아냐. 관리사무소 친구 놈이 그러는데, 시끄럽다고 민원 들어와서 집주인한테 연락했더니 

어젠 안 들어갔다던데."

 

허걱. 딴 놈이 나타났다!

넌 누구냐!

 

이튿날 상경했다. 부모님께 심야 소음은 좀 어떠냐고 여쭸다.

 

"시끄러울 때 있고, 조용할 때 있고... 아파트가 다 그렇지 뭐."

 

정성껏 쓴 포스트잇은 먹혔을 수도, 안 먹혔을 수도 있다는 거... ㅠㅠ

난 다시 눈물 콧물까지 쏙 빠지게 혼구녕을 내줬다. 상상속에서....... 

어쨌거나 층간소음 해결의 시작은 대화다. 손글씨부터 시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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