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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맛 9

술과 함께, 비오는 날 생각나는 '기름골뱅이'

남영동 열정도 거리를 좋아한다. 용산구 금싸라기 빌딩숲에 둘러싸인 채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한 이곳은 마음을 푸근하게 한다. 대부분 오래된, 키작은 건물이 오밀조밀 모인 열정도는 지방 소도시 골목 같다. 촬영용 세트장 같기도 하다. 나에게는 때때로 커피 한 잔, 밥 한 끼, 소주나 위스키, 와인과 치즈를 즐기기 좋은 쉼터이기도 하다. 가끔 뜨끈한 국물이 생각날 때면 나베집, 얼큰한 맛이 그리우면 낙지집을 들르기도 한다. 이 거리는 비가 올 때면 가장 좋다. 특히 번뜩 생각나는 한 곳이 있다. 거리 중간 즈음, 한두 사람 겨우 지나갈 만한 좁은 골목길에 위치한 '기름집.' '기름집'이라고 하면 참기름이나 들기름이라도 짜는 곳인가 싶지만 그저 술집이다. 한쪽 공중 구석에 매달린 낡은 텔레비전 화면에서는 은..

일상/맛 2020.07.15

매실 씨 수월하게 빼는 법!

해마다 매실청을 담근다. 숙성된 매실액을 통에 담아두었다가 주로 지인들에게 나누어준다. 식구들이 먹는 건 정작 얼마 되지 않는다. 90%에 달하는 매실청을 나누어주곤 하는데 하나도 아깝지가 않다. 재작년엔가. 아빠가 보내주신 매실액 한 박스를 보관하고 있다가 지인들에게 나누어주기로 했다. 1.8리터 페트병 다섯 개, 백팩에도 두 개를 더 넣었다. 총 일곱 병의 매실액을 나르는 건 문제 되지 않았다. 당시 난 힘이 아주 넘치는 뚜벅이였으니까. 여름이라 좀 덥다는 게 신경쓰였다. 백팩을 메고 캐리어를 끈 채 상수동 친한 언니네 가게로 향했다. 엘리베이터 없는 지하철 출입구 계단을 내려갔다. 캐리어를 읏짜, 하고 드는데 꽤 묵직했다. '까짓 거 저 아래까지만 잘 들고 내려감 되지... ' 무겁긴 무거웠던지 퓨..

일상/맛 2020.07.09

여름별미, 서리태 콩국수 맞나? 맛나!

엄마는 어제 하루 꼬박 서리태를 불려놓으셨다. 이튿날 콩국수를 해 먹기 위해서였다. 주말이지만 코로나19로 외출을 자제하는 요즘이라 있는 재료로 만들어 먹자 해서 선택한 서리태 콩국수! 오늘 오전에는 콩을 삶아서 껍질을 한 알 한 알 모두 벗겨내셨던 모양이다. 콩을 믹서기에 곱게 갈고보니 연둣빛이 살짝 감도는 콩물이 완성되었다. 그걸 곧장 냉장고에 넣어놓았다. 엄마는 열심히 국수 면발을 삶으셨다. 적당히 익은 면발을 얼른 찬물에 식혔다. 처음에는 뜨거우니까 젓가락으로 몇 번 저어주어야 했다. 이후 손으로 치덕치덕! 물기를 꾸욱 짜서 두 개의 그릇에 담았다. 드디어 콩국수의 핵심인 걸쭉한 서리태 콩물 투하! 침이 금세 고였다. 오이채를 올려야 하는데 장을 보지 않아서 고명할 만한 게 없었다. 그나마 찾아낸..

일상/맛 2020.07.05

요양병원을 나와 '사과빵'을 외치다!

지난 1월, 요양병원에 장기 입원 중이신 할머니를 모시고 안동으로 향했었다. 거동을 못한 상태로 지낸 지 3년 여. 오랜만의 외출임에도 그녀는 안동휴양림 방문을 한사코 마다하셨었다. 몇 시간을 달려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었겠지만 자식과 손주들이 불편할까봐 고개 젓는 마음임을 모를 리가 없었다. 여든을 훌쩍 넘긴 노인은 많이 달라졌다. 과거 대장부처럼 다부지던 목소리는 기운을 잃었고 총명하던 눈빛은 희미해진 시력과 잦아진 눈물 탓에 꽤나 슬퍼 보이기까지 했다. 할머니만 괜찮으시면, 자식 손주들은 괜찮답니다! 휠체어를 차에 싣고 결국 할머니의 시골여행을 감행했다. 안동호가 바로 보이는 휴양림에서의 2박3일. 그녀는 자주 웃었고, 잘 드셨다. 화장실 변기에 직접 가서 앉지 못한다는 사실이 인간을 얼마나 굴욕적으..

일상/맛 2020.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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