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분업 사태 이후 20년 만인 지난 8월, 코로나19 대규모 확산에도 강행한 의료계 파업을 두고 전 국민의 공분이 들끓었다. 의사국가고시에 응시할 의대 본과 4학년 학생들은 시험마저 포기한 채 파업의지를 보였다.
정부는 이들의 파업 철회를 부탁하는 한편 의사국가고시 접수 기간을 한 차례 연장하면서까지 이들이 제자리로 돌아올 것을 설득했다. 정부와 의협이 협상에 나서면서 문제가 일단락된 듯 보였다. 그러나 의사국가고시를 둘러싼 이들의 입장이 한 달 만에 완전히 바뀌면서 '시험 재응시'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본과 4학년 학생들은 때늦은 시험 재응시 의사를 밝혔고, 의대 교수들이 국시 문제 해결 요청에 관한 민원을 국민권익위원회에 제기했다. 사립대 ˙국립대 의료원장들까지 이들을 구제해 보겠다며 국민 앞에 사과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그야말로 의료계가 사과 총력전을 벌이는 모습이지만 본과 4학년생들은 시험 응시 의사 표현 이후 대리사과의 뒤편에만 선 듯 아무런 입장 표현이 없다. 시험을 치르는 기회와 형평성의 기준을 흔드는 이들의 요구에 여론은 '특혜'로 간주하는 시선이 많아 싸늘하기만 하다.
주요 대학병원장이 의료파업에 나섰다가 의사국가고시 응시 기회를 스스로 포기한 의과대학 본과 4학년 학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직접 대국민 사과에 나섰다.
김영훈 고려대학교의료원장, 김연수 국립대학병원협회회장(서울대병원장), 윤동섭 연세의료원장, 김영모 사립대의료원협의회장(인하대의료원장) 등 주요 대학병원장들은 8일 정부서울청사 본관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코로나19로 인해 매우 힘든 시기에 의대생들의 국가고시 문제로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하다"고 밝혔다.
김영훈 고려대학교의료원장은 “국가고시를 치르지 못해 신규 의사가 배출되지 못한다면 심각한 의료공백이 우려된다면서 의대생들의 국시 재허용 기회를 달라”고 요구했다.
김 원장은 또 "코로나19 팬더믹이 언제 종식될지 모르는 엄중한 시점에서 당장 2천700여명의 의사가 배출되지 못하는 상황은 상상하기조차 싫은 심각한 의료공백"이라며 "의료의 질 저하가 심히 우려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국민건강을 책임지는 의료인이자 선배로서 지금도 환자 곁을 지키고 코로나 방역에 최선을 다하지만 국민들의 마음을 사지 못한 점을 깊이 반성한다"며 "질책은 선배들에게 해 달라"고 말하며 거듭 사과의 입장을 밝혔다.
김 원장은 "6년 이상 학업에 전념하고 잘 준비한 의대생들이 미래 의사로서 태어나 국민 곁을 지킬 수 있도록 국가고시 기회를 허락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란다"며 "국민 여러분께 간곡히 호소한다"고 덧붙였다.
병원장들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입장 변화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의료계가 파업 등 단체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과 이에 대한 국민의 동의 없이는 국시 재응시 기회를 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창준 보건의료정책관은 8일 오전 중앙안전재난대책본부 기자설명회에서 "어제 정부의 입장을 이미 밝혔다. 하루 사이에 입장이 바뀔 사안은 아니다"라고 못 박으며 사실상 의과대학 본과 4학년 의대생들의 국시 재응시 기회를 줄 수 없다는 걸 재확인했다.
이 정책관은 "앞으로 어떠한 문제에 있어서 의사들의 단체 행동, 즉 의사들이 의료행위를 이행하지 않고 (또 다시 파업에 나설 수 있다는) 국민들의 걱정과 우려가 명확히 해소되지 않은 측면이 있다"라며 "의료계 전반적으로 그동안 단체행동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까지 정부는 기존 입장에서 바뀌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 8월 코로나19 재확산 속에서 파업을 강행한 의료계를 향해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성명서를 통해 “아무런 잘못도 없는 환자의 생명을 볼모로 삼아 정부를 압박하는 의사들의 집단행동은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의사들이 총파업으로 환자 치료를 거부하는 건 직무유기와 다름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전국 40개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본과 4학년 대표들은 지난 9월 24일 공동성명을 내고 국시에 대한 응시 의사를 표명했다.
그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으로 인해 국민 건강권이 위협받고 의료 인력 수급 문제가 대두되는 현시점에서 우리는 학생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 '옳은 가치와 바른 의료'를 위해 노력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는 국민이 ‘불공정 특혜’로 받아들인다며 추가 시험 검토에 선을 그었다.
코로나19 대규모 확산에도 의사들 파업 강행한 이유는?
대한의사협회는 정부가 제시한 아래의 주요 의료정책을 4대 악으로 규정하고 강력 반발했다.
▲ 의과대학 정원 확대
▲ 공공의대 신설
▲ 한약 탕약 건강보험 시범 적용
▲ 원격의료 확대 등
정부는 의대 증원·공공의대를 설립하여 연 3천58명에서 3천458명으로 의대 정원을 10% 남짓 늘린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늘어난 의료인력은 지역의사로 선발해 의무 복무하도록 하고 역학조사관 등 특수 분야와 기초의학 연구 인력으로 육성한다는 방침이었다.
의협은 이에 대해 “무분별한 의사 증원은 대도시와 지역 간의 의료 격차를 더욱 크게 늘릴 것이고 의료 과수요와 과도경쟁을 유발해 의료제도를 심각하게 왜곡시킬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약 탕약 건강보험 시범 적용에 대해서도 의협은 반발했다. 정부의 한약 탕약 건강보험 급여화는 일명 ‘반값 한약’으로 불리는 정부 시범사업으로 10월부터 추진한다.
한약 급여화는 한의원에서 처방하는 한약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정책으로서, 환자가 치료용 첩약을 저렴하게 복용하도록 하기 위해 건강보험에서 비용 절반을 지원한다.
전공의들은 지난 2000년 의약분업 사태 이후 20년 만인 지난 8월 정부를 상대로 총파업함으로써 줄다리기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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