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 사람을 두고 부정적인 의미로서 '예민하다'고 일반화하는 이들이 있다. 정말로 그럴까? 그렇다면 왜일까?
매번 같지 않은 글을 써내려가야 하는 게 글쓰는 이들의 의무이다. 독자나 관객을 공감 또는 감동시켜야 하는 게 글쓰는 이의 직업윤리이자 책임감이다.
글을 쓴다는 건 바람을 붙잡는 것과 같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살갗의 스침, 흩날리는 머릿결, 나뭇잎을 흔들고, 자연의 매무새를 흐트러트리는 무형의 기운에 우리는 바람을 느낀다.
글은 머릿속에 부는 찰나의 생각을 붙잡아 완성한 바람열매다.
머릿속을 부유하던 느낌과 단상이 달아나기 전 얼른 말로 빚고 엮으며, 여러 줄의 글로 맺어 완성해야 한다. 마치 우주의 끝 어느 목적지에 접점을 맞히려고 애쓰듯이 작가는 최대한 빨리 예민하게 의식을 집중하지 않는다면 생각의 결실은 없다. 그 순간을 반복적으로 감내해야 하는 작가는 예민해야만 한다.
어떤 선후배가 이런 통화를 했더란다. 작가와 라디오DJ, 공영방송국 PD를 거치며 재능을 발휘하고 실력을 인정받던 선배. 이제는 지방 한 카페의 사장님으로 정착하여 지역사회에서 아이들에게 글 쓰는 재능기부를 통해
삶의 재미를 이어가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 후배는 고민을 털어놓았다.
"글 쓰는 게 갈수록 힘들어요. 쓰지 못하겠어요."
후배는 요즘 넋을 놓은 채 글쓰는 루틴조차 없어진 생활을 반복했다.
"글쓰는 게 힘든 건,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부드러운 말투에 항상 담백한 진리를 놓치지 않는 선배 덕에 후배는 스스로를 돌아보았다.
남이 원하는 글, 사주가 지향하는 글, 대중이 좋아하는 작업물.......
그동안 그런 작업을 반복한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글을 쓰는 게 원래 어려운 건지, 글을 쓰지 못하는 건 열정이 부족한 건지, 다른 장르 글을 쓰는 방법을 모르는 건지 말이다.
후배는 선배의 지적처럼 솔직하지 못했던 것 같다고 결론을 냈다. 생각과 달리 자신이 아는 것을 쓰지 않고 솔직하지 못한 글을 반복해 쓴 탓에 창작이 답보상태인 걸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듯하다고 했다.
"괜찮은 줄 알았는데, 그래서 전 요즘 안 괜찮은 거였어요."
- 괜찮다,라는 말 속에 숨은 '안 괜찮다'는 고백
진짜 괜찮지 않은 순간의 '괜찮다'는 결핍의 부피가 줄어들지 않는 고백일 때가 많다.
슬퍼도, 괴로워도, 눈물 나도, 미워도, 화나도, 원망해도, 보고 싶어도, 배가 고파도, 배가 불러도, 자존심 상해도,
좋아해도, 사랑해도, 질투 나도, 이별해도... 괜찮다고 하는 수많은 순간들. 실은 안 괜찮은 걸...
'나 괜찮지 않아'라고, 말해버리고 싶은 순간이 있다. 누군가 나에게 뾰족한 수를 주지 못해도 의식을 짓누르는 짐이 조금은 덜어질까, 의심하며 우리는 문득 이러한 생각을 하곤 한다.
습관처럼 주위를 의식하는 일이 '나다움'을 잃어가던 건지 몰랐던 시간들. 때때로 가식은 껍데기와 같아서 장애물로 작용한다. 우주의 중심인 '나'에게 주파수를 맞춰 놓고 정말로 원하는 게 뭔지, 사랑하는 일에 열정을 발휘하고 있는지, 체크하고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글을 쓰는 이도, 쓰려는 이도 예민할 때가 많다. 스티븐킹이나 조앤 롤링이나 로버트 맥기 등 유명한 작가들은 하나 같이 예민한 순간을 거듭하며 작업했고 '외로운 시간'과 싸웠다. 산자락에 걸린 뿌연 안개 같기만 한 의식이 걷히고 진짜 주인공인 '나'를 발견하는 일, 그 괜찮은 순간에 이르기까지 예민한 이들을 응원한다.
현실에 닳는 순간 무뎌지고 말았던 가슴 안의 '나다움'이 아침이슬의 영롱함처럼 새로운 도전의 빛이 되기를.
'일상 > 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이콘택트, 김태연과 박정아의 '끝나지 않을 마지막 수업'을 소망하며 (0) | 2020.10.22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