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사는 이야기

아이콘택트, 김태연과 박정아의 '끝나지 않을 마지막 수업'을 소망하며

돌풀 2020. 10. 22.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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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앎'이란 '암'보다 가슴 먹먹한 일인가 보다.

‘우리’를 있게 한 사람과의 이별은 생각만 해도 눈물 나는 일인가 보다.


 가르친다는 것의 의미를 나름 일찍 깨달았다고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난 교육을 업으로 한다는 건 참 무서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는 바를 누군가의 머리에 깊숙이 스며들게 하는 일이기에 더욱 조심스럽고 어려운 일이라고 여겼다.

아이였으면서도 선생님의 가르침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했던 걸 보면 난 애늙은이였는지도 모르겠다. 내 어릴 적 선생님들은 녹색 칠판에 하얀 분필로 한글과 숫자, 영어, 한문 등을 그었다. 분필은 닳고 닳아 금세 짧아지기 일쑤였다. 그 생명력과는 달리 선생님들의 손만큼은 내 의식에 오래도록 남아 가르치겠다는 열정의 조각으로 숭고하게 반짝인다. 그런데 가르침이 무서운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 건 그 숭고한 영역 밖에 선 선생님들의 모습이 한몫했다.

해마다 아이들은 반과 학년이 달라졌지만 일부 못된 훈육방식을 거듭하는 이들의 습관은 변할 줄 몰랐다. 나이 든 백 교사는 아이들이 장난을 치다가 실수로 어항이나 창문을 깨트리기라도 하면 ‘괜찮아?’라는 말 대신 버럭 고성이 앞섰다.

깡마른 송 교사는 어린아이들의 체력으로 버티기 어려운 단체기합을 겁나 '빡세게' 주느라 일주일 내내 아이들의 어깨와 종아리를 앓게 했다. 친구의 삼촌이었던 송 담임교사는 다른 교사로부터 반 아이들이 지적을 받기라도 하는 날에는 자존심이 긁혔는지 아이들을 일렬로 세워 놓고 뺨을 사정없이 갈겼다. 커피를 좋아하던 이 선생은 암기를 못하면 자신의 볼에 뽀뽀하는 벌칙을 내리거나 교복 가슴선이 바짝 드러나도록 양팔을 ‘ㄴ’ 자로 들어 벽에 기대게 하는 벌을 주었다.

 그들의 그런 방식은 공포의 대상이었지만 무엇보다 더 무서웠던 건 가르침 때문에 스러져가는 교사들의 모습이었다. 얼굴도 마음도 예쁜 정 교사는 기관지가 좋지 않은 탓에 이비인후과 단골 환자였다. (그는 몇 해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림 그리기나 악기 연주를 하는 등 다재다능했던 성 교사는 화재 시 소화기 사용법을 실험하겠다고 과학실에서 손잡이를 눌렀다가 한 번 누르면 멈추지 않는 분말소화기 때문에 아이들을 백색공포로 몰아넣고 질식하게 할 뻔했다.

아이들은 대부분 선생님을 이해했지만 그 과한 열정 때문에 교장실로 불려 가 엄청 혼이 난 성 교사는 눈이 벌게지도록 울어야만 했다. 머리를 하나로 묶고 다니던 강 교사는 꼴찌 타이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의 반 때문에 늘 두통약을 달고 사는 눈치였다. 

그는 이달학습 숙제를 내고, 다음 날 수업이 다 끝나도 이달학습으로 자율학습을 시켰다. 하루하루가 모여서 이 달이 될 텐데, 이 달 문제를 다 풀어도 다음 달에 여전히 이달학습의 지옥에 빠지고 마는 쳇바퀴. 난 그래서 이달도 다음 달도 선생님이 싫었다. 선생님 입장에서야 꼴지 떼기 전략이었겠지만, 내 호감이 멀어질수록 그의 팽팽하던 얼굴은 살이 쑥 빠졌고 눈 그늘이 생기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나이 든다는 게 저런 거구나, 어린 찰나 보았었다. 그러면서 "선생님은 죽지 마요" 마음속으로 말을 건네곤 했다.

 

 오늘 우연히 TV에서 아이콘택트라는 프로그램을 보았다. 국악신동 김태연과 스승 박정아 명창의 ‘마지막 수업’이라는 게 의미심장해 보였다. 스승과 제자라... 어떤 수업이기에 ‘마지막’이라고 했을까 궁금했다. 

 판소리를 가르치는 박정아 명창은 지난해 유방암 4기 선고를 받았는데 전이가 심해 수술조차 불가능한 상태였다. 그녀에게 소리를 배우던 아이들 대부분이 떠나갔다. 암 선고의 충격보다 아이들이 떠나가는 게 더 가슴 아팠다는 명창의 말에 가슴 속에서 뭔가가 뭉글거렸다. 이별을 준비해야 하는 이에게 먼저 뒷모습을 보이는 게 어떤 상처였을지 감히 상상조차 되지는 않는다. 그저 아렸다. 그녀 곁에 남은 아이는 아홉 살의 김태연이었다.

박정아 명창처럼 여섯 살 때 소리를 시작했다. 첫 스승 아래 여전히 남겠다는 아이가 참 대견하면서 애틋해 보였다. 박정아 명창을 만나 실력이 훌륭한 이수자로서 의연히 자리를 지킨 아이, 김태연. 아이는 지난 해 스승이 아픈 사실을 알았지만 ‘반드시 이겨내실 거라 믿는다’라고 했다.

 방송국에 간다면 대개 들떴을 텐데 아이는 이날 스승의 부름이 또 혼내려고 부르시지 않았나, 하는 마음이 앞선 모양이었다. 그러면서도 스승의 얼굴을 보자마자 아이가 미소부터 보인 건 둘 사이의 믿음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을 만한 그림이었다.

아이의 미소는 늘 옳다. 순수하다. 사랑스럽다. 그래서 스승의 말머리는 더 목이 멘 모양이었다. 아이의 눈빛은 예리하다. '스승님이 뭔가 달라 보였다'라고 했으니 말이다.

“선생님이 마지막 수업을 하려고 하거든...”

“.......”

 

 스승의 그 말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던 모양인지 아이의 눈시울은 금세 촉촉해졌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입에서는 차마 막지 못한 서글픈 숨결이 자꾸만 쏟아졌다. 순간 아이에게 먼 이별은 저런 표정이구나, 가슴에 뭉글거리던 물풍선 같은 게 왈칵 터지고 말았다. 아이의 일그러지는 표정이 왜 이다지 아파 보이는지 보는 내내 안구의 온도가 점점 높아져 갔다.

 

 대학 시절 한 교수님은 ‘스승’이라는 말은 제자가 감히 정하여 부르는 단어가 아니라고 하셨다. 제자라고 인정해야만 비로소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이루어진다고 말이다. 그러니 누군가의 가르침을 받는다고 해서 제자가 된 것이 아니고, 누군가를 가르친다고 해서 스승이 된 것도 아니다. 둘 사이의 인정과 믿음이 있어야만 이루어지는 관계. 그것이 스승과 제자 사이다.

 

 박정아 스승과 김태연 제자의 수업에서 오랜만에 앎에 대한 먹먹함이 무엇인지를 느낀다. 지식을 알아가는 과정이나 누군가에게 그것을 전하는 시간은 어려운 일이다. 더 어려운 건 그 과정에서 서로를 깊이 알아간다는 일인 듯하다. 칭찬에 인색한 스승이더라도 그녀 곁에 끝까지 남겠다는 어린 제자와 생의 마지막을 받아들이고 준비해야만 하는 스승. 두 사람은 앎을 위한 3년 간 힘들었던 수업 이상의 '마지막 수업'을 수긍해야만 한다.  

 

 

 스승의 마지막 수업이라는 말에 한동안의 울먹임을 간신히 절제하던 아이는 "네"라고 말했다. 작은 아이의 입에서 나온 그 한 음절이 콧날을 더 시큰하게 했다. 암이라는 병보다 앎에 대한 시간이 이다지도 아프게 다가온 적이 있던가. ‘우리’를 있게 한 사람과의 이별은 그래서 생각만 해도 더 눈물 나는 일이었나 싶다. 

 

박을 놓고 마주한 채 실근실근 톱질하듯, 두 사람의 '마지막 수업'이 영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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